Abstract
‘역(易)’은 동아시아 전통의 과학사상과 서양의 그것을 비교하는 작업 속에서 흥미롭게 다루어지는 주제 중 하나이다. 니덤(Joseph Needham)은 易의 ‘수’이해와 피타고라스학파의 수비학의 유사성을 지적하면서, 초기에는 서양과 비슷한 단계에 있었던 중국의 원형과학이 관료제라는 사회 문화적 특질로 인해 근대과학으로의 이행을 저지당했다고 여긴다. 이 글은『역학계몽』에 나타난 ‘數’개념과 피타고라스학파의 ‘數’개념을 비교하는 작업을 통해, 위와 같은 니덤의 관점을 반성해보는 글이다. 피타고라스학파는 우주가 수학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는 모든 현상 사물을 구성하는 본질적 원소, 즉 물리적 대상이라 여겼다. 「하도」와 「낙서」의 천지지수와 대연지수를 기본으로 전개되는 易의 수 개념은 우주의 요소들과 그것들의 자리, 작용·변화 과정을 그린다. 易과 피타고라스학파 두 체계에서 모두 ‘數’는 자연현상 및 사물들을 표현하고 있으며, 수리적 특성은 우주가 운행하는 원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지닌다. 그러나 피타고라스학파의 수비학은 수가 지니는 ‘영원불변함’이라는 가치에 초점이 맞추어진 반면, 易의 數는 천지만물이 자연 그대로 변해가는 현상을 묘사하는 쪽에 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피타고라스학파의 ‘수’ 개념은 ‘형상(form)’ 개념을 형성하여, 플라톤을 거치고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 과학의 전형을 형성하게 된다. 반면 易의 ‘수’ 개념은 우주를 구성하는 개인으로서의 정당한 자리와 마땅한 행위라는 의리적 요소를 포함하게 되며, 이것은 주체 내면으로 눈을 돌리는 사유를 진행시켰다. 이를 통해 易의 자연과학적 요소가 의리적 요소에 의해 근대과학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손상당한 것이 아니라, 易의 ‘수’개념 자체에도 이미 의리를 추구하는 가치관이 내재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즉, 동일한 원형과학이 다른 문화에 의해 속박된 것이 아니라, 동일하다고 여겨지는 두 원형과학 자체에도 이미 매우 다른 함의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