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수신(修身)’은 공자 이래로 유가 철학의 주요 주제였으며, 동중서(董仲舒)를 비롯한 한대 (漢代) 유가들 또한 이런 전통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공자를 비롯하여 춘추전국 시대 유가 철학자들은 말을 조심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말이 진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수신의 과정에서 언어에 대한 경계를 강조하였다. 그러나 한대 유가들은 언어에 대해 강한 신뢰를 보인다. 동중서는 성인이 하늘의 뜻[天 意]에 따라 명칭을 지었다고 본다. 하늘은 비록 말하지 않고 행위 하지 않지만 ‘명(名)’을 통해 자신의 뜻을 드러낸다. 양웅(揚雄)은 “말은 마음의 소리이고 글은 마음의 그림이다” 라고 주장함으로써, 말과 글이 내면을 완벽하게 표현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왕충(王 充)은 동중서와 달리 하늘의 의지 등을 믿지 않는 자연철학자이지만, 말과 글은 그것을 사 용하는 사람의 생각[意]과 감정[情]을 그대로 표현한다고 믿었다. 한대 유가들의 언어관은 수신의 구체적인 방법에 있어서도 변화를 가져왔다. 양웅은 수 신을 위해 성인의 말씀이 담긴 오경(五經)의 학습을 강조하며, 스승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오경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본다. 또한 양웅은 오경의 말씀을 행동으 로 옮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인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 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말과 글은 사람의 정(情)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왕충은 ‘논 설(論說)’이 자기 자신을 갈고 닦는 데 중요한 방편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문장은 마음속 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문장은 마음을 갈고 닦는 데 효과적이며 더 나 아가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데에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데 가장 우 선시해야 할 것은 올바른 도(道)를 정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대 유가들은 성인의 말씀을 읽고 들으며 좋은 문장을 쓰는 것이 수신의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