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장자는 천에 의한 유가 윤리의 정당화를 비판한다. 천도(天道)에 비추어보면 유가나 묵가 모두 동일한 가치를 지니며, 어느 입장이 우월하다거나 시비를 가릴 수 없다. 순자는 장자의 비판을 받아들여 천과 유가 윤리와의 고리를 끊어낸다. 또한 그는 인간 본성(性)에서 도덕의 객관성을 찾으려는 맹자를 비판한다. 순자는 인간 본성은 악하다고 봄으로써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근거한 도덕을 상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순자는 유가 윤리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예의 본질적인 속성에 눈을 돌린다. 이 때 순자가 주목하게 되는 것이 예의 분류(類)적 속성이다. 순자의 사유에서 예는 기본적으로 외부 대상에 대한 분류의 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의 가장 큰 기능은 나눔(分)이며 나눔은 인간의 분류라는 행위에 의해 이루어진다. 「정명(正名)」을 통해 드러난 이름부여는 분류에 근거하며, 분류는 자연성과 규약성을 지닌다. 분류의 행위는 언어에 독립적인 인간의 인지 능력에 기반하는 측면이 있으며, 동시에 규약적인 측면까지 포괄하는 증층적인 측면을 가진다. 인간의 유사한 경험의 구조에 기반한 분류의 자연성은 어느 정도의 객관성을 우리에게 보장해준다. 그러나 규약에 기반한 분류는 사회, 문화적 과정을 거치면서 변이를 하게 되며, 개인마다 문화권마다 달라질 수밖에 없고 다양성을 띨 수밖에 없다. 가치 다원주의적인 사고는 순자의 ‘통류(統類)’라는 개념에서 보인다. 순자는 우리가 류적 사고를 극대화하면 ‘통류’를 알 수 있고, 그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통류라는 것은 선왕의 제도(制)와 법(法)을 익힘으로써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통류’라는 것은 이전 세대의 정선(精選)된 경험의 집적물을 학습하고 실천함으로써 깨닫게 되는 것이다. 통류라는 것은 이전 세대의 역사적 경험을 학습하고, 그 경험을 대상화해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지혜이다. 따라서 통류라는 것은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근거를 가지지 않는다. 또한 ‘통류’의 다른 이름인 ‘예’ 또한 절대적이며 보편적이라고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