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주역』은 지금껏 자연의 이치로부터 군자의 도리와 책무를 추출해낸 최고의 수양서로 인식되어왔다. 『주역』이 천도(天道)로부터 인도(人道)를 추출한 진리의 요체라고 회자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대과학의 이론체계와 동떨어져 분석된 심성론적 측면의 평가일 뿐이다. 적어도 현대과학과 『주역』 사이에는 이상과 현실만큼이나 큰 괴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가까이는 몸에서 취하고(近取諸身), 멀리서는 사물에서 취했다(遠取諸物)’는 「계사전」의 선언은 『주역』이 물질세계의 자연법칙과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우리가 오히려 그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일깨운다. 본 논문은 『주역』의 화택규(火澤睽)괘가 가진 ‘어긋남’의 이치가 사람이나 동물의 시각경로에 구현되어 있는 자연법칙을 요약한 내용이라는 점을 논증한다. ‘보는 수레(見輿)’, ‘본래의 지아비(元夫)’와 같은 괘사(卦辭)와 효사(爻辭)를 구성하는 낯선 표현들은 하나같이 안구(眼球)와 뇌 속의 시각경로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작용을 가리키는 은유적 선언이다. 만약 화택규 뿐만 아니라, 『주역』의 64괘가 모두 사람의 몸과 자연의 사물이 작용하는 원리로부터 그 요점을 추출한 것이라면, 『주역』은 이제 심법(心法)이 아닌 과학과의 만남을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