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은 금문독존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하휴가 금문독존을 지향하는 이유와 그의 공양학 계승 및 그의 대표이론인 삼과구지설을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휴 금문독존의 정치적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해 얻은 결론은 다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BR첫째, 하휴가 금문독존에 골몰한 이유는 『춘추곡량전』과 『춘추좌씨전』의 계속된 도전으로 쇠퇴일로를 걷고 있던 금문경학을 지켜내어야 할 학파적 의무 때문이었다. 춘추공양학의 주류를 계승한 그가 기존 공양학의 단점, 즉 사법(師法)과 가법(家法)으로 인한 경직화와 번쇄화를 호무생과 동중서의 공양학을 통해 극복하고자 한 것도 그의 자각적인 학파적 의무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금문독존을 지향하는 것이 유학의 종사인 공자의 정신과 사상을 수호하는 길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고문경학이 주공을 추종하는데 비해 금문경학은 공자를 육경의 저작자요, 수명한 소왕(素王)으로 여겨 존숭하기 때문이다.BR둘째는 하휴의 공양학 계승 부분으로, 하휴도 이전 공양학자들처럼 철저하게 존왕론을 견지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가 존왕론의 핵심인 대일통도 계승하여 천하가 천자를 중심으로 하는 일원화된 체제를 갖추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했음도 알 수 있었다. 외척과 환관의 정권농단과 군벌들의 발호로 혼란한 정국을 타계하는 유일한 길이 황권의 회복에 있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휴가 공양학파의 존왕론과 대일통 이론을 계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BR셋째는 하휴의 핵심 이론인 삼과구지설에 관한 것으로, 하휴는『춘추공양전』과 호무생의 조례 및 동중서의 공양학을 종합하여 기존의 삼통설과 삼세설 및 이 내외설을 하나의 체계 속에 통합시켰다. 그리하여 삼통설을 통해서는 역사와 왕조의 순환원리를 구축했고, 또 이를 통해 _춘추_를 신왕에 배치시켜 이상적인 통치 모델을 만들었다. 또 삼세설을 통해서는 공자가 직접 본 정공과 애공 시대를 중심으로 『춘추』의 서법을 통해 포폄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외설을 통해서는 역사는 쇠란→승평→태평으로 진행되면서 발전한다는 진보적 역사관을 구축했다.BR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휴가 처한 동한 말의 상황은 하휴가 구축한 이론과 정반대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하휴의 역사진화발전사관은 일종의 문치태평(文致太平)이라 할 수 있다. 실제적인 역사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였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하휴의 금문독존은 철저하게 공자의 정신을 지키고 발양하고자 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황제를 중심으로 하는 일원화된 통치질서를 구축함으로써 그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정치적 혼란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가 구축한 ‘삼과구지설’ 등 다양한 이론들은 이를 위한 힘겨운 노력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