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의 유행으로 인하여 우리 삶은 기반 자체가 흔들리고 있으며, 질병으로 인한 고통 뿐 아니라 심각한 수준의 경제적 혼란 또한 야기되고 있다. 21세기의 과학 기술 문명의 성과에 안주하던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종, 지역, 세대, 계층을 막론한 인류 공통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울리히 벡은 이같은 전염병의 유행, 자연 재해, 기후 변화 등 일상적인 위험들에 무고한 시민들이 노출되어 있는 현대 사회를 위험 사회라고 규정했다. 우리는 위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에 마주했을 때 thymos, 즉 분노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행동할 수도 있고, eros, 즉 사랑이라는 감정을 기반으로 행동할 수도 있다. thymos는 이성을 도와 욕구에 맞서 싸우는 영혼의 부분으로, 부당하고 심각한 피해 상황에서 ‘이렇게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라는 감정의 격동이다. 그러나 thymos는 그 자체로서 이성적인 판단 능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에 판단에 오류나 실수가 있을 수 있고, 또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보복’에의 소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안고 있다. 반면 eros는 thymos와 달리 ‘선과 미’를 향한 ‘끌림’인데, 이는 선과 미가 어떤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이성적인 능력을 그 자체로서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eros는 이미 일어난 피해에 집중하여 보복을 욕구하기 보다는, 똑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방법을 모색하고, 사건 당사자들이 모두 조금 더 ‘선하고 아름다운’ 상황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부모는 잘못된 행동을 한 자녀에게 그 잘못을 되갚아 줌으로써 보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 행동이 왜 잘못되었는지 알려주고,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도와주고 이끌어준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는 현대 사회의 민주 시민들 간에는 이와 같은 사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논문에서는 thymos의 정체와 한계를 밝히면서 불의를 타파하는 궁극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하고, 공감과 연대의 기반이 되는 eros를 위험 사회의 대안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를 소개할 것이다. 악의 순환 고리를 끊어 내고 지속적인 선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분노가 아닌 사랑이 필요함을 증명하는 것이 이 논문의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