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윤리학과 종교는 각각 독자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규범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윤리학이 제시하는 규범은 이성에 토대를 두고 있고, 종교는 신앙에 토대를 둔 규범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도덕적 규범과 종교적 규범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동일한 상황에서 정반대의 규범을 제시하기도 한다. 윤리학과 종교, 이성과 신앙의 갈등 혹은 대립은 비단 윤리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에서 최초로 이 문제를 검토한다. 소크라테스와 에우튀프론은 경건함이 무엇인지를 두고 열띤 논쟁을 펼친다. 에우튀프론의 경건함의 정의는 규범윤리이론으로서 신명론을 함축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의 경건함의 정의를 논박함으로써 에우튀프론의 신명론의 한계를 드러낸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반론이 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거나 신이 도덕적 선, 정의와 무관하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주목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에우튀프론』에서 뿐만 아니라 『변론』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는 누구보다도 신의 존재를 확신하고, 자신의 도덕적 가르침이 신의 명령에 부합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에우튀프론의 신명론과는 다른 독특한 소크라테스의 신명론의 가능성을 열어 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