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논문의 목적은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에서 제시되고 있는 ‘시작’(Dichten)과 ‘사유’(Denken)의 관계를 양자의 우위관계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시금 근본적으로 조명하는 데 있다.BR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시작’은 하이데거의 후기 사유를 이루는 여러 근본 낱말들 중 하나이다. 실제로 소위 ‘전회’(Kehre)의 시기라 불리는 1930년대 중반부터 하이데거는 그가 ‘시인 중의 시인’이라 일컫는 횔덜린을 비롯하여 트라클, 릴케, 게오르게, 헤벨 등과 같은 시인들의 시를 존재 사유의 관점에서 해명하는 한편, 그러한 해명의 과정 속에서 시작에 관한 여러 심도 있는 논의를 수행한 바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그러한 논의를 수행해나감에 있어서 그가 ─확실히 유의미하게 보일 정도로─ 자주 그리고 반복해서 ‘시작과 사유의 관계’라는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이데거는 시작과 사유의 관계를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해당 주제에 관한 그의 천착은 과연 어떠한 사유의 사태로 우리를 이끌고 있는가?BR 하이데거에 따르면, 시작은 사유와 ‘이웃관계’(Nachbarschaft)를 맺고 있다. 즉, 하이데거의 후기 작품 곳곳에서 자주 등장하는 ‘사유하는 시작’(die denkende Dichtung), ‘시 짓는 사유’(das dichtende Denken)와 같은 표현들이 지시해 보이고 있듯, 시작과 사유는 ─물론 ‘똑같은 것’(das Gleiche)은 결코 아니지만─ 근원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동일한 것’(das Selbe)으로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BR 그렇지만 하이데거 본인 스스로가 지적하고 있듯, 비록 이웃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지만 시작과 사유 사이에는 동일성뿐만 아니라 차이 또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제기되는 물음은 다음과 같다. 하이데거는 과연 어디에서 시작과 사유의 동일성을, 그리고 차이를 보고 있는가? 그가 보고 있는 양자의 차이 속에는 어쩌면 ‘사유에 대한 시작의 우위’에 관한, 또는 정반대로 ‘시작에 대한 사유의 우위’에 관한 암시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하이데거는 도대체 어떠한 이유에서 그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유에 대한 숙고와 ‘더불어’ 시작에 대한 숙고를, 그리고 시작에 대한 숙고와 ‘더불어’ 사유에 대한 숙고를 멈추지 않았던 것일까? 이러한 물음들에 직면하여 본 논문에서 필자는 하이데거의 존재 사유에서 제시된 시작과 사유의 관계를 특별히 양자의 우위관계에 대한 해명의 관점에서 다시 한 번 더 면밀히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