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맹자』「진심 상」의 초두 4개장은 맹자의 운명론이 집중적으로 주장된 곳이다. 맹자는 묵자의 ‘비명(非命)’론을 방어하기 위해서 ‘운명론을 믿고 따르면서도 태만하지 않고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논리를 수립해야 했다. 그리고 ‘무명(無命)’의 폐단을 바로잡기 위해서 맹자는 ‘운명에 달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양자에 대하여 서로 다른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논리를 수립해야 했다. 그 결과로서 맹자의 ‘입명(立命)’론이 제기된 것이다. 입명이란 개념적으로는 ‘운명이 있다는 주장을 믿고 [바르게] 따르는 처신’이며, 방법론적으로는 ‘삶에서 마주치는 외적 조건에 가치를 두지 않고 수신하면서 자연스럽게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 핵심은 ‘경명중성(輕命重性)’으로서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운명에 달린 것[요수, 부귀 등]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수신[양성(養性)]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로써 맹자는 묵자의 비명론과 자신이 제기한 ‘무명(無命)’의 폐단에 대응할 수 있었다. 맹자는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아서 인생의 목표를 ‘락(樂)’에 두고, ‘입명(立命)’의 덕을 통하여 ‘복(福)’이 아니라 ‘락’에 이른다는 과정을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운명의 존재는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 되어버렸고 덕과 무관하게 운명을 부여하는 하늘[즉, 덕복불일치의 하늘] 역시 모순 없이 이해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운명에 달린 ‘복’이 아니라 수신의 결과인 ‘락’이 중요하다는 가치론적 전회를 통하여, 맹자는 인간에게 성(性)을 부여하는 하늘과 우연성으로서의 운명을 주재하는 하늘과의 모순성을 해소하였을 뿐 아니라 수덕(修德)의 동기부여 요인으로서 ‘복’이 사라진 자리를 ‘락’으로써 대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