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논문은 한나 아렌트의 역사 개념과 이에 대한 발터 벤야민의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아렌트 역사 개념이 내포하고 있는 독특한 정치적 의미를 밝히고자 한다. 먼저 아렌트 역사 개념의 주요 특성을 벤야민의 역사주의와 진보주의 비판의 계기와 더불어 분석한다. 여기서 그 특성은 첫째, 그 어떤 정치적 관점도 배제된 순수한 객관적 역사기술의 주장에 대한 비판으로, 둘째, 발전의 이데올로기가 결부된 ‘과정’으로서의 역사 개념에 대한 비판으로 드러난다. 다음으로 이러한 비판을 통해 아렌트가 근대의 역사 개념과 대조되는 고대의 역사 개념의 특성을 공정성과 불멸성으로 변별해냄을 드러낸다. 고대의 역사 개념은 사라진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가 단순한 사실을 넘어서는 진실을 말하는 일이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증언과 재심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역사 개념의 정치적 의미 속에서 억압받는 자들을 고통으로부터 구제하는 벤야민의 역사 개념의 영향이 가장 크게 드러난다. 우리는 이렇게 보이고 들리는 공적 영역에서 배제된 존재들의 정치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역사 개념을 ‘파리아의 역사’라고 명명하고,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역사 개념에 기반하여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그 의미를 밝히며 기억하는 공동체가 요구됨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