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이 글은 ‘명’(明)의 의미에 관한 연구이다. 우리말에서도 자주 쓰이는 ‘신명’(神明)은 접신(接神)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으로 말하면, 종교적인 엑스타시(ecstasy)나 노자가 말하는 황홀(恍惚)과 관계된다. 신으로 말하면, ‘천지신명’(天地神明)이라는 숭배의 대상을 가리킨다. 그런데 신명에 명 자는 왜 들어가며, 초제(醮祭) 때 우리는 왜 물속의 물인 정화수를 떠놓는가? 한마디로 초제는 별에 지내는 제사인데, 과연 별과 물의 관계는 무엇인가?BR 대답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우주를 물로 보는 것으로 은하수(銀河水)가 대표적인 예다. 다른 하나는 물에 별을 담아 기도하는 사람 앞에 가져다 놓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하다.BR 곽점본(廓店本) 『태일생수』(太一生水)는 말 그대로 ‘태일’이 물을 낳는 모양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태일은 북극성인데, 이 태일이 물을 낳고 물은 생명의 원천이 된다. 그런데 하늘이 ‘신’(神)을 낳고 땅은 ‘명’(明)을 낳는다고 한다. 게다가 명은 음(陰)을 낳는다. 그렇다면 명은 양의 영역이 아닌 음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따라서 이때 명은 상식적으로 말하는 ‘밝음’이 아니라 ‘어둠 속의 밝음’과 같이 다른 뜻을 갖는다.BR 『주역』(周易)은 본경인 『역경』(易經)과 해설인 『역전』(易傳)으로 나뉘는데, 특히 「계사」(상)에서는 신과 관련된 용법이 20여 차례나 나온다. 신은 『역경』에서는 어떤 기여도 하지 않았는데, 『역전』에 들어오면서 맹활약을 펼친다. 『역전』에서는 이러한 신이 명과 함께 쓰이는 용례가 5차례 나오며, 역은 바로 신명에 이끌려 성인이 지은 것이다. 『역전』의 시대에 이르러 신명은 우주와 자연의 신성으로 자리 잡는다.BR 『노자』는 ‘습명’(襲明)이나 ‘미명’(微明)과 같은 표현으로 여전히 명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강조한다. 『장자』는 아예 ‘이명’(以明: ‘밝음으로’)론으로 시비에서 벗어나라고 주장한다. 『장자』에서 신명은 7차례 나오는데 4차례는 「천하」에 집중된다. 「천하」에 따르면 노자는 신명에 살고(居) 장자는 신명과 나아갔다(往). 그런데 「천하」편의 작자는 노자를 ‘태일을 주인으로 삼았다’고 하여 노자와 태일종교의 연관성을 드러내고 있다. 명은 이렇게 태일과 연결되는 것이다. 아울러 ‘신은 내려오고, 명은 나온다’는 표현을 통해 『태일생수』에서 명이 음에 속할 수 있음을 엿보여준다.BR 고대 전적 속에서 명은 오늘날처럼 양이 아닌 음으로 여겨진 경우가 있다. 오늘날의 명당(明堂)이 음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명은 해와 달로 이루어진 형성자지만 해보다는 달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밝음은 낮이 아닌 밤에서야 그 빛을 발한다. 그 밝음의 중심에 북극성 곧 태일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