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플라톤은 『국가』 9권 583b-588a에서 제시되고 있는 ‘세 번째 논증’을 통해 올바른 사람의 삶이 가장 즐거운 것임을 입증함으로써, 올바른 사람의 삶이 가장 행복한 것임을 밝히려고 한다. 그는 이 논증을 “넘어뜨림들 중에서도 가장 크고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언급하고 있지만, 여러 연구자들은 그의 논증 방식을 불만족스러울 뿐만 아니라 “거의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우리의 사고방식에 낯선 것”으로 평가해왔다. 그러나 이 논증은 플라톤의 언급 그대로 그의 도덕 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쾌락의 본성을 단순히 주관적 느낌의 차원이 아니라 활동들의 가치와 연관해서 분석하는데, 이는 우리가 어떤 종류의 활동을 추구하느냐에 따라 존재의 상태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적 쾌락들은 일시적으로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거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들을 추구하는 활동들에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위’를 보지 못하고 ‘아래’에서 ‘중간’으로 이동하고서 ‘위’에 올라갔다고 착각하는 사람들과 같다. 대부분의 육체적 쾌락들은 고통과 상관적이기 때문에 순수한 즐거움이 될 수 없고, 비교나 대조를 통해서 과장되거나 축소되기 때문에 환영적인 것이다. 플라톤은 고통과 상관적이지 않고 인간을 본래적으로 충족시켜줄 수 있는 활동들에 따른 순수하고 참된 즐거움이 있다고 보았다. 그는 지성적인 활동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까닭은 이런 활동을 통해서 인간이 내적으로 변화할 수 있고 세속적인 욕망들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이성은 단순히 계산하고 추론하는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나 욕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다. 이성은 혼의 다른 부분들의 욕망을 억제하거나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서적 변환을 통해서 욕망을 좋은 방향으로 이끌며, 적절하게 그 고유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 그가 세 번째 논증을 “가장 크고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 말한 이유는 이를 통해서 우리의 혼이 건강한 상태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