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본 연구의 목적은 한자경의 연구(『한국철학의 맥』)에서 ‘다산이 우리 사상사의 연속성, 정신의 역사성을 부정했다’는 주장을 반성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한자경은 성리학을 ‘내재주의’적 관점으로, 다산의 학문을 ‘외재주의’적 관점으로 해석하며, 정약용의 사상은 결국 ‘탈성리학적’이면서 ‘탈유교적’이라고 해석한다. 한자경의 주장에 따르면 다산은 송대 성리학이 공맹의 원시유학과 그 근본정신에서부터 상반되며 질적으로 ‘변질’된 것으로 본다. 이렇듯 한자경은 다산이 ‘주희가 유학의 도통으로 확립한 것이 오히려 유학의 왜곡일 뿐’이며, 주자학을 계승한 조선 유학의 역사도 “자기 왜곡의 역사”인 것이라고 주장하여, 결과적으로 다산은 “우리 사상사의 연속성, 정신의 역사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규정한다. 한자경은 이러한 다산의 사상관이 마테오 리치(Matteo Ricci, 1552-1610)의 『천주실의』에 대한 영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다산의 학문이 “우리 사상사의 연속성, 정신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이것을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에서 배운 것이라는 한자경의 주장은 이 연구서 전체에 흐르는 ‘한국철학의 맥’ 즉 일심이 유독 다산에게서만 단절되었다는 문제가 생긴다. 이에 대해 논자는, 다산에게서 한국철학의 고유성이 없지 않으며, 특히 다산의 편지글에는 역사와 시원에 대한 그의 관심이 많이 나타난다는 점과 그의 독특한 실존적 사상 경향이 나타나고 있음을 드러내었다. 그는 자신의 실존적 삶 속에서 더 깊이 더 멀리 시원을 바라보았으며, 우리나라 문학과 역사, 선현들의 글들을 읽고 지혜를 얻어 또 그것을 후세에 전해주려고 노력했다. 다산은 ‘주자학’과 ‘공맹유학’을 거슬러 올라가, 그것들 보다 더 원천적인 ‘상고시대 중국유학’, 또 그 보다도 더 시원적이면서 동시에 ‘지금 여기’를 강조하는 실존적인 철학적인 사유를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