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한스 라이헨바흐(Hans Reichenbach, 1891-1953)는 상대성 이론에 대한 철학적 분석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철학을 체계적으로 전개한 대표적인 논리경험주의(Logical Empiricism) 철학자이다. 시간과 공간의 철학에 관한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저서는 『시간과 공간의 철학』(1928년)이지만, 실질적으로 그의 철학은 이전에 출판된 저서인 『상대성 이론의 공리화』(1924년)에 집약되어 있으며 대략 이 무렵 상대성 이론 속 시간과 공간에 대한 라이헨바흐의 철학적 분석은 종료되었다. 공간의 질서는 시간의 질서로, 시간의 질서는 인과의 질서로 환원이 가능하며, 시공간의 계량적 관계는 변화하더라도 위상적(topological)이고 인과적인 관계는 불변한다는 것이 라이헨바흐의 철학적 결론이었다. 결국 그는 시간의 인과적 이론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왜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끊임없이 미래로 흘러가는지를 상대성 이론의 범위에서는 해명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경험주의적 관점에 기초하여 미래와 과거를 구분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이 실제로 존재함을 보이고자 시도하는데, 이러한 그의 시도를 담은 논문이 “세계의 인과적 구조와 과거와 미래 사이의 차이”이다. 이 논문의 핵심적 통찰은 2가지이다. 첫째, 효과의 부분만으로도 그 원인을 추론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는 결정되어 있지만, 원인의 부분만으로는 그 효과를 추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미래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둘째, 동시간적 횡단면의 사건들로부터 도출되는 예측적 확률보다 후측적 확률이 같거나 크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계산하여 보임으로써, 과거와 미래 사이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만약 이와 같은 라이헨바흐의 핵심 통찰이 옳다면, 우리는 인간 경험 속에 포함되는 주관적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인간이 경험하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시간 흐름의 실재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또한 이와 같은 라이헨바흐의 철학적 관점은 오늘날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시간의 실재성’에 관한 철학적 논의에 중요한 시사를 줄 수 있다.